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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암살 이후.. 속속 드러나는 자민당과 통일교의 은밀한 관계

이강순 기자 | 기사입력 2022/08/02 [23:20]

아베 암살 이후.. 속속 드러나는 자민당과 통일교의 은밀한 관계

이강순 기자 | 입력 : 2022/08/02 [23:20]

일본 정치의 추한 단면 드러내.. 암살범 재판 통해 문제점 수면으로 올라올 듯

 유세 중 총을 맞고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장례가 진행된 지난 7월 12일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소재 일본 국회의사당에 조기가 걸려 있다.

일본 우익세력의 상징적인 인물인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암살(7월 8일)을 계기로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 일본 보수 정치권과 통일교의 유착관계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최근에는 거의 모든 미디어에 통일교와 연관 있는 정치인들에 관한 기사가 나오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다. 급기야 7월 31일에는 자민당 총재인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침묵을 깨고 통일교와 관련이 있는 의원들이 나서 정중하게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정부와 정치권, 매스컴은 아베 암살 사건 발생 때만 해도 '우익 정치세력과 통일교의 은밀한 관계'를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했다. 범인이 수사를 받으면서 사건의 배경에 통일교가 있다고 진술했는데도 불구하고, '특정 종교단체'라는 용어로 통일교의 이름을 덮으려고 했다.

그러나 힘 있는 사람들이 말하고 주류 미디어들이 추수하면 진실도 덮어질 수 있는 시대는 일본에서도 끝났다. 이번에도 경찰이 '특정 종교단체'라고 설명하고 주류 미디어들이 이를 그대로 따랐으나, 이런 시도는 2~3일을 버티지 못했다. 특히, 60년대 말부터 통일교와 깊은 관련을 맺어온 자민당은 당초 철저한 함구령을 내려, 통일교가 표면에 나오는 것을 적극적으로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자민당의 통제력이 미치지 않는 주간지와 인터넷 매체 등에서 통일교라는 이름이 흘러나오면서 정치권도 미디어도 더 이상 통일교라는 이름을 은폐할 수 없게 됐다.

일본 정치의 추한 단면이 드러나다

▲ ▲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달 8일 도쿄 총리공관에서 굳은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이 기자회견을 통해 범인의 어머니가 통일교 회원이었다는 것을 밝힌 7월 11일을 기점으로, 거의 모든 미디어가 특정 종교단체에서 '옛 통일교'로 표현을 바뀌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정치인과 통일교의 유착관계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통일교는 1954년 '재림 예수'를 자처한 문선명(1020~2012)이 세운 교회로, 반공을 고리로 세계 우파 정치인과 깊은 인연을 맺으며 교세를 키워왔다. 일본에서는 1964년 종교법인으로 인가를 받아 본격적인 포교를 시작했다. 일본에서 좌파 학생들의 투쟁이 맹렬했던 1968년에는 이들에 대항하기 위한 조직으로 일본 우익의 거물들인 기시 노부스케, 고타마 요시오, 사사카와 료이치와 손을 잡고 국제승공연합을 조직했다. 이것이 일본 우익과 통일교의 본격적인 첫 접점이다. 그러나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고 냉전이 해체되면서 점차 반공을 매개로 한 유대는 약해졌다.1980년대 이후에는 정치와 관련한 일보다 이른바 '영감상법'이라고 불리는 물건 판매와 대규모 합동결혼식이 사회 문제가 되면서, 통일교가 큰 주목을 받았다. 영감상법은 영계에서 고통받는 조상을 구원하려면 물건을 구입해야 한다며 도장과 항아리, 묵주 등의 물건을 고가로 파는 상법을 말한다. 전국영감상법대책변호사연락회에 따르면, 통일교는 최근 30년만 따져도 3만4537건에 1237억엔의 영감상법 피해를 일으켰다고 한다.

1990년대 말부터는 영감상법에 대한 비판여론이 커지고 옴진리교 사건의 충격으로 눈에 띄는 정치 유착 활동은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때에도 국제승공연합을 통해 맺어진 자민당 우파 정치인과 깊은 관계가 이어져왔다고, 종교 전문가들은 말한다.

시마조노 스스무 전 일본종교협회 회장(도쿄대 명예교수)은 7월 31일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2010년 들어 자민당-공명당 연립정권이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통일교와 적극적인 상호 이용 관계가 회복됐다고 분석했다. 정치인은 통일교에서 조직과 자금을 지원받는 대신 통일교는 정치인의 지원을 지렛대로 교세 확장에 나서는 상호 거래가 활발해졌다는 것이다.

특히, 통일교는 선거 때 열성 신도를 보수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우익 정치인의 선거 운동원으로 파견해 적극 지원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선거제도가 극히 적은 표로 당락이 갈리는 소선구제로 바뀌면서 조직 동원력이 있는 종교단체는 정치적인 활용 가치가 더욱 커졌다.

이런 면에서 아베 암살 사건은 역설적이게도 '사이비 종교와 정치의 거래'라는 일본 정치의 음습하고 추한 단면을 드러내는 촉발제가 되고 있다. 더욱이 통일교에 대한 일반시민의 여론이 아주 나쁜 터여서, 통일교와 자민당 우파 의원들의 깊은 관계가 폭로되는 것은 자민당에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자민당도 애초 통일교과 관련해 함구령을 내렸을 것이다.

이제까지 통일교와 관련이 확인된 현직 각료만 봐도 하기우다 고이치 경제통산상, 아베의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 방위상, 스에마쓰 신스케 문부과학상, 니노유 사토시 국가공안위원장이 있다. 또 전직 각료와 의원 중에서도 아베파를 비롯해 두 자리 수 이상 의원의 이름이 나오고 있다. 일본유신회도 13명(총 의원수 62명)이 연루됐다고 자체 조사를 발표하는 등, 국민민주당, 입헌민주당 야당 의원들의 이름도 거론되지만 워낙 자민당 의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어 물타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자민당 우파 의원과 통일교의 유착을 드러내는 보도가 앞으로 얼마나 더 이어질지, 그리고 이런 폭로로 일본 정치가 얼마나 영향을 받을지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통일교와 자민당 의원들의 유착이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자민당이 더욱 큰 곤경에 빠져들 것만은 확실하다. 기시 총리가 자민당 차원의 대응을 언급하지 않고 관련이 있는 의원들의 개별적인 설명이 중요하다고 언급한 것은 이 문제가 당 차원으로 파급하는 것을 막기 위한 '꼬리 자르기'의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다. 

범인의 망상? '정신감정' 신청한 검찰

▲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에게 총을 쏴 숨지게 한 야마가미 데쓰야가 지난달 10일 오전 일본 나라 서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며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일교와 자민당의 유착 문제의 전개 과정에서 앞으로 가장 주목해 봐야 할 일은 아베 암살범 야마가미 데쓰야의 재판이다. 재판을 통해 아베의 암살과 통일교의 관계가 더욱 공개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일본의 비판적인 철학자인 우치다 다쓰루는 자민당과 정권 쪽에서는 아예 암살범을 정신질환자로 몰아 재판에 나오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7월 25일 일본의 <룬디>라는 잡지와 인터뷰에서 "정부와 자민당은 범인이 깊은 정신병을 앓아 망상적으로 범행을 한 것이므로 통일교와 자민당을 연결하는 것은 사건과 전혀 무관하다는 스토리를 만들어, 그를 정신병원에 수감시켜 미디어 앞에 두 번 다시 나오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쨌든 재판에 넘기지 않고 '유치장이나 병원에서 자살'이라는 스토리가 그쪽에게 가장 바람직한 전개가 되겠지만, 나 같은 사람이 이런 시나리오를 간파하고 떠들고 있으니까 그러기는 힘들 것"이라고도 했다.

이런 속에서 일본 법원은 7월 29일 최근 암살범 야마가미에 대한 검찰의 정신감정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야마가미는 오사카구치소로 옮겨져 11월 29일까지 4개월간 정신감정을 받게 됐다. 물론 이 기간 동안 언론에 노출되는 일도 없다.

바야흐로 일본 정치는 아베 암살을 계기로 '아베 찬양세력' 대 '아베 비판세력', '통일교의 유착 폭로 세력' 대 '유착 감추기 세력'의 힘겨루기 국면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이 싸움에서 누가 승기를 잡느냐에 따라 일본 정치의 향방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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